“느낌은 한순간에 끝나버리지만, 감정은 계속되지.
눈으론 볼 수 없는 것들도 있지. 보이는 것에 얽매이지 말거라.
들어, 네 안 깊은 곳에 살고 있는 감정들, 네 안의 소리를.”
우리가 살면서 인생의 고난을 마주할 때면 “차라리 (감정을) 느끼지 못했으면 좋겠어.”, “기억상실증에 걸려 다 잊어버리고 싶어.” 등의 말을 하곤 합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인데요. 이 소설의 작가인 로이스 로리 작가 역시 어릴 적 딸(언니)을 잃고 극심한 고통에 쌓여 살아가는 아버지를 보며 고통스러운 기억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고, 그 경험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합니다. 과연 감정과 기억이 없는 세상은 정말로 행복할까요? 이번 <한 주 한 편, 영화 추천> 너에서 소개할 영화는 인간의 감정과 기억, 자유의지에 대한 교훈을 주는 영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입니다.
‘완벽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마비
직업 수여식에 참석한 조너스의 가족들, 영화 스틸컷, 네이버 영화
대파멸 이후 인류는 차별과 분쟁이 없는 완벽한 평등을 실현하고자 모든 투쟁의 원인을 제거한 유토피아, ‘커뮤니티’를 만들었습니다. 기억, 감정, 기후, 개성, 가족, 직업, 소유, 명성, 승패, 인종, 종교 등 차별과 분쟁을 조장할만한 어느 갈등 요인도 없는 무채색의 평등 사회. 모두가 동일한 조건에서 사는 삶. 이곳에서 ‘차이’란 차별과 분쟁에 따른 공포, 고통, 시기심, 증오를 유발하는 ‘불쾌한’ 것이자 사회로부터 구별되는 이질성에 불과합니다.
커뮤니티에서 12세가 되면, ‘직업 수여식’을 거쳐 각 사람에게 적합한 직업이 부여됩니다. 영화의 주인공 조너스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과 지성과 정직, 용기를 모두 겸비한 인재로서 온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차기 ‘기억보유자’가 됩니다. 기억보유자는 커뮤니티에서 유일하게 인류의 모든 역사적 기억을 보존하는 막중한 임무를 담당합니다. 즉, 커뮤니티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과거의 교훈을 토대로 지혜를 전하는 해결자이자 현인이지요. 기억보유자가 된 조너스는 기억전달자(선임 기억보유자)로부터 인류의 과거 기억을 전달받고 경험하며 감정이 존재하는 세상을 향유하고 추억하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커뮤니티 밖의 진짜 세계에 대해 하나씩 알아 갈수록 무채색의 커뮤니티에서 그는 점차 ‘색’을 볼 수 있게 되며 완벽하다고 믿었던 커뮤니티의 모순점에 의문을 품게 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기버’와 ‘조너스’ , 영화 스틸컷, 네이버 영화
모든 감정과 기억이 통제된 사회에서 기억 전달자는 조너스에게 보이는 것에 얽매이지 말고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라고 조언합니다. 이를 통해 조너스는 ‘완벽한 평등’을 실현하고자 각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무참히 짓밟고, 우생학을 기준으로 인간의 쓰임새를 나누어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죄책감 없이 살인(일명 ‘임무해제’)을 저지르는 극악한 잔인함을 보고 기억 경계선을 넘어 인류로부터 제거된 인간성을 회복하겠다고 다짐하고 커뮤니티의 시스템에 반기를 들게 됩니다. 과연 조너스가 이 ‘인간성 혁명’을 성공할 수 있었는지는 영화를 통해 생생하게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억과 정체성 ; 사유하는 존재로서의 존엄성에 대하여
기억이란 인간이 외부 환경으로부터 유입되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또는 유지)하며 필요한 상황에서 이를 적절히 인출하여 활용하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기억은 우리가 태어나서 자랄 때까지 보고 듣고 느끼면서 축적된 수많은 ‘교훈’이자 ‘경험의 산물’로서 정체성의 구성요소가 되지요. 자아정체성(ego-identity)이란 라틴어 identitas에서 유래된 단어로 ‘전적으로 동일한, 틀림없는 본인이다’ 라는 정체(正體)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정체성이란 한 인간이 출생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삶의 다양한 사건들에 대응하며 형성한 연속적∙독자적∙의식적인 자기에 대한 일관된 기억, ‘자기개념’(Self-concept)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영화 속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정보(self-knowledge)도 없을뿐더러 인류, 즉 인간이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정체성마저 삭제된 채 살아갑니다. 영화의 주인공 조너스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남들과 다르자, 이러한 차이를 불편해하며 이를 숨겼던 것처럼. 자신에 대한 기억의 소멸은 한 개인의 고유의 삶에서 구성되는 정체성과 형성되는 개성의 파괴, 더 나아가 타자와 구별된 ‘나’로서의 자기개념이 박탈됨을 의미하며 인류에 대한 기억의 소멸은 인간은 ‘어떤 가치로, 어떻게 살아가는 존재인가’라는 실존적 성찰의 기회를 회수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정체성인 ‘인간성’마저 소멸한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세상에 대한 기억이 전무한 커뮤니티에서 그들은 ‘나와 남’에 대한 개념이 없으니 개별적 사유 없이 단순히 일관적인 패턴에 따른 집단행동만을 하는 반응적인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또한 영화 속에서 두드러지게 제거된 것이 더 있지요. 바로 ‘감정’입니다. 감정이 없기에 그들은 삶의 다양한 대상과 경험에 대해 단지 ‘인식’할 뿐이지 ‘향유’할 수 없고, 더 나아가,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감정에 대한 우리의 가장 큰 오인은 이성적 판단을 저해한다는 점인데요. 오히려 합리적인 판단의 과정에서 인간성이 포함된 개인 삶의 서사인 ‘감성’의 개입이 없다면, 이성적인 선택이란 어렵습니다. 이성적 합리성에 따라 완벽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살인을 일삼으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행동인지도, 심지어 ‘살인’ 행위인지도 모른 채 행동하던 것처럼 말이지요.
기억, 감정, 선택의 자유를 찾아나선 조너스, 영화 스틸컷, 네이버 영화
영화의 마지막에서 조너스가 기억 한계선을 넘어 기억을 되찾아 오자, 커뮤니티에는 색이 입혀지게 됩니다. 마지막 영화적 표현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까요? 필자는 회복된 색채를 ‘분별력’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시각을 통해 단순히 외부 정보를 인식하고 수용할 뿐 아니라 일련의 ‘사고’ 과정을 통해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과 판단을 하는 사유적 존재입니다. 따라서 커뮤니티에 색, 즉 온전한 시각이 회복되면서 단순 반응에 불과하던 그들의 정체성이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존엄성을 갖추게 되었으며 행동과 그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간 실존으로 거듭난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결국 이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인생의 심연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하더라도 인간을 인간답게 하기 위해서 기억과 감정은 필수적이라는 교훈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기억전달자 ‘기버’ 에게 기억을 전달 받는 ‘기억 보유자’ 조너스, 영화 스틸컷, 네이버 영화
지금까지 살펴본 영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는 기억과 감정이 소멸된 세계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보존된 인간성을 토대로 나를 인식하고 세상을 사유하며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삶의 의미가 궁금한 학우들, 삶에 지쳐 사유하는 존엄적 존재로서 살아가야 할 이유에 의문을 가졌던 학우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한주한편, 영화추천> 코너는 다음 주에도 계속됩니다. 많은 기대를 부탁드립니다. 🙂
[취재 : 학생기자 함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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