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기자가 추천하는 올해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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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조각에 대하여

■ 장지수 기자의 선택 – 정세랑 『피프티 피플』

누군가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처럼 느껴진 적이 있나요?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길거리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인터넷에 떠다니는 글과 사진 그리고 영상을 볼 때면 가끔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나도 모르는 새에 이름도 모를 누군가와 상처 그리고 위안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단편이 모여 하나의 장편소설을 이루는 『피프티 피플』은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53명 각각의 이야기들을 통해 서로가 멀어 보일지라도 가까이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피프티 피플』은 의사, 간호사뿐 아니라 보안요원, MRI 기사, 홍보부 직원, 해부학 기사, 임상시험 책임자, 닥터 헬기 기사, 공중보건의, 제약회사 영업사원, 병원 설립자, 병원을 찾아드는 환자들 등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담겨있다. 작가의 취재와 자문을 통해 이루어진 이야기인 만큼 의료계열 직종을 희망하는 이라면, 간접적으로 병원의 현장 분위기를 느끼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 p. 266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지만, 동시에 상처를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가족의 사연, 성소수자의 시선, 층간소음 문제, 낙태와 피임에 대한 인식, 싱크홀 추락사고, 대형 화물차 사고 위험 등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담아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가족의 사연, 규익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이야기는 2011년도부터 많은 임산부가 비슷한 시기에 폐 질환 증상을 보이면서 수면위로 드러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규익의 작은 누나가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안전법은 유가족들이 만들었다‘고 한 말이 아픔을 겪은 사람이 해결해야 하는 세상의 잔인함과 자신이 겪지 않으면 모른 채 넘어갈 수도 있는 우리의 무던한 감각을 돌아보게 한다.
작가는 한사람이라도 당신을 닮았기를, 당신의 목소리로 말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완전히 닮지 않았어도 어느 한 부분이 닮았다고 느끼는 이가 있기 마련인데, 그렇다면 성우를 꿈꾸는 지은(문예창작과 휴학, 병원 인포메이션 알바)의 이야기를 꼽고 싶다.

처음 좋아하게 된 걸 계속 좋아하지 않게 되어도, 다음 걸 또 찾으면 돼요.” p. 321
희망에 부풀어 가슴 설레었던 일이 어느 순간 지겨워졌을 때 회의감이 찾아오곤 한다. 누군가는 지금이 꿈을 찾으며 방황하는 시기라고 말하지만,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는 순간이 오면 그 말이 무색하게 느껴질 뿐이다. 이러한 지은에게 연모(건축학부, 병원 이송기사 알바)가 건넨 말이 기자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의 말은 ’처음‘ 좋아하는 일에 초점을 두는 것보다 앞으로 ’좋아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피프티 피플』은 각각의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 같은 재미가 있다. 모든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으므로 쉽게 지루해하는 사람들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끝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반면에 책을 천천히 읽는 편이라면, 뒤로 갈수록 인물들의 관계도가 헷갈릴 수 있으므로 인터넷에 많은 독자가 정리해둔 소설의 인물 관계도를 참고하면서 읽기를 추천한다.

”퍼즐을 맞추다 보면 백색에 가까운 하늘색 조간들만 끝에 남을 때가 잦다. 사람의 얼굴이 들어 있거나, 물체의 명확한 윤곽선이 보이거나, 강렬한 색이 있는 조각은 제자리를 찾기 쉬운데 희미한 하늘색 조각들은 어렵다. 그런 조각들을 쥐었을 때 문득 주인공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모두가 주인공이라 주인공이 50명쯤 되는 소설, 한사람 한사람은 미색밖에 띠지 않는다 해도 나란히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 (작가의 말 中)

올 한해를 맞이하여 주인공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가 주인공인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삶의 주인공임을 깨닫기를, 흩어져 있는 삶의 조각을 하나씩 매만져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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